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08,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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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시는 진은영 시인의 <우리는 매일매일>입니다. 진은영은 알록달록한 시인입니다. 그는 색감이 묻어나는 감각적인 시어를 사용합니다. 버찌, 토마토, 오렌지라는 단어를 읽으면 곧바로 색깔이 떠오르지 않는가요. 시의 첫 연에 나오는 흰 셔츠 윗주머니의 버찌라는 구절을 읽으면 누구든 흰 셔츠에 터진 버찌가 물들이는 보랏빛 과즙을 생각합니다. 다만 그뿐입니다. 만약 이 시가 난해하게 느껴지셨다면 그것은 이 시에 사랑이나 슬픔 같은 단어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토마토와 오렌지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과일의 생생한 색감과 과일 특유의 시큼함만이 떠오를 따름이지요.

바로 그 지점입니다. 진은영의 시를 읽는 방법은 그 느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는 색깔이나 맛을 쫓는 것이 진은영의 시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진은영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젊은 시인들의 시에 나타나는 총체적인 성향입니다. 근래 들어 현대시는 단어의 뜻이 아닌 단어의 뉘앙스로 말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포도라는 시어를 쓰면 그것은 ‘포도과의 낙엽 활엽 덩굴성 나무의 열매’라는 의미와는 무관하며 단지 포도라는 말을 휘감는 보라색 색감과 새콤달콤함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느낌으로 읽어보는 <우리는 매일매일>은 어떤 내용일까요? 저는 이 시가 청춘에 관한 시라고 추측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에 나타나는 세 가지 지점이 그 이유입니다. 첫째는 이 시에 어른거리는 이국적인 분위기입니다. 흰 셔츠나 흑단상자 같은 단어가 일으키는 고전적인 느낌, 그리고 토마토와 오렌지라는 과일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뒤엉키며 어딘가 프랑스 68혁명의 청춘 같은 아우라가 풍깁니다. 둘째는 다양한 과일들의 생긋한 이미지입니다. 공중에서 뜨겁게 익는 푸른 토마토, 사계절에 비유되는 네 조각 오렌지는 이 시에 여름햇살의 온도를 덧입힙니다. 시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젊고 생생합니다. 셋째는 실패라는 키워드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에는 두 개의 실패가 나옵니다. 하나는 버찌를 윗주머니의 넣은 채 넘어지는 일, 다른 하나는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오래 생각한 일입니다.

만약 흰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넣고 넘어진다면 셔츠가 상큼한 과즙으로 물들지 않을까요? 그리고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너무 오래 생각했다는 말은 구태여 오래 생각할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닐까요? <우리는 매일매일>이 청춘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청춘이라는 실패의 싱그러움, 그리고 어떤 일이든 오래 고민할 필요 없다는 당부를 담고 있을는지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매일매일>은 어차피 넘어질 거 고민하며 살지 말자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의미보다 느낌을 쫓는 진은영의 시처럼 말입니다. 의미에 관해 고민하지 마세요. 넘어졌다면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파이프 담배에 취하듯이 우리에겐 달콤한 과일향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누군가는 진은영을 비롯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두고 그들의 시가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며 비판을 가했습니다. 저는 이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시가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과일의 맛이나 꽃의 색깔만 늘여놓는 일이 삶에 더 가까운 진술이 되기도 합니다. 문득 우리가 의미의 강박 속에 살고 있진 않은가 되물어봅니다. 이러한 질문은 꼭 시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성과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도 비슷합니다. 자원봉사를 하더라도 큰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휴학을 하더라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학원에 등록해야 마음이 놓이는 청년들. 우리가 주로 만나는 청춘은 <우리는 매일매일>의 청춘과는 사뭇 다릅니다.

노는카페 자리도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얼마 전, 노는카페의 청소년여행동아리 프리지아는 해외여행 공모전에 지원하며 ‘교훈 없는 여행’이라는 모토를 내세웠습니다. 여행 공모전에 지원할 때는 어딘가 여행 후의 배운 점을 꾸며 써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너무 가짜 같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교훈 없는 여행을 가보자. 어른들은 우리에게 늘 교훈을 강요하지만 아무 것도 배우지 않으며 내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실은 교훈의 강요에서 벗어난 시간낭비야말로 진짜 배움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언제나 스스로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노는카페’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열심히 놀아야 제대로 배우지 않겠어요? 너무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살아가는 일이 곧 노는 일이잖아요.

진은영의 <우리는 매일매일>은 의미 없는 삶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혹은 의미 없는 삶을 살자고 강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삶 자체만으로 이미 풍성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더는 불안하지 말고 삶에서 풍기는 향기를 열심히 맡읍시다.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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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자리’는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소소한 생각을 나눕니다.
* ‘읽는자리’가 소개하는 모든 책은 노는카페 자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글 : 조윤기